돌풍의 클리퍼스, 올시즌 대형사고 칠까?
최근 LA 클리퍼스의 상승세가 무섭다. 무서운 상승세로 서부 컨퍼런스의 포식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2월부터 26승 5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최고의 페이스를 자랑하는 모습이다. 지난 1월 말 NBA.com을 통해 발표된 파워 랭킹에서도 전체 승률 1위 보스턴 셀틱스와 디펜딩 챔피언 덴버 너게츠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을 정도다.
‘올 시즌에는 숙원의 파이널 우승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도 팬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시즌초 아쉬운 모습을 보였음에도 12월부터 이어진 고공행진을 앞세워 현재 34승 15패(승률 0.694)로 서부 컨퍼런스 3위에 올라있다. 1, 2위 오클라호마시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승차가 0.5경기에 불과한지라 현재의 경기력만 유지한다면 1위 등극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는 분석이다.
뒤를 바짝 쫓아온 덴버까지 그야말로 혼돈의 정상대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클리퍼스는 NBA에서 손꼽히는 암울한 역사를 가진팀이다. 1970년 창단되어 어느 정도 역사는 갖춰가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곳곳에 구멍이 숭숭 나있다. 단 한번의 파이널 우승도 없으며 2021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전에 오르기 전까지 무려 50년 연속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실패라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구단을 대표할만한 변변한 프랜차이즈 스타조차 없다. 2010년대 크리스 폴, 현재의 카와이 레너드(32‧201cm), 폴 조지(33‧203cm)까지 이름값 좀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영입한 케이스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블레이크 그리핀과도 2017~18시즌을 마지막으로 결별하고 말았다.
대다수 시즌 하위권을 맴돌았고 이는 같은 연고지를 함께 쓰고 있는 명문 LA 레이커스와 비교되어 더더욱 좋지 않은 쪽으로 이미지가 박히고 말았다. 최근들어 달라지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는 약팀 이미지가 짙다. 클러퍼스 팬들 사이에서 ‘보살이 되어야만 이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말이 넋두리처럼 흘러나왔을 정도다.
만년 약체팀 이미지에 자존심이 상했던 탓일까. 2019~20시즌을 기점으로 클리퍼스는 승부수를 띄우기 시작한다. 우승청부사로 불리던 레너드를 FA로 영입한 것을 비롯 트레이드로 조지까지 데려왔다. 순식간에 리그 최고 수준의 공수겸장 포워드 둘을 보유하게된 것이다. 약체 이미지 때문에 선수들이 회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던 상황에서 팬들을 흥분시키는 대형 영입이 아닐 수 없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레너드와 조지는 분명 존재감만으로도 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선수임은 분명하지만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건강하게 뛴 기간이 적었다. 한명이 괜찮으면 다른 한명이 탈이 나는 등 징검다리 부상으로 구단의 속을 태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다지만 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클리퍼스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올시즌 클리퍼스는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일단 뎁스가 두터워졌다. 원투펀치 포워드가 중심인 클리퍼스 가드진을 이끄는 선수들은 무려 제임스 하든(34‧196cm)과 러셀 웨스트브룩(34‧191cm)이다. 둘다 정규시즌 MVP출신으로 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다. 이름값만 놓고보면 어느 팀에도 꿇리지 않는 라인업이다.
특히 하든 영입은 레너드, 조지에만 의존하던 팀 컬러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든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필라델피아에 니콜라 바툼, 마커스 모리스, 로버트 코빙턴, KJ 마틴까지 무려 네 명의 포워드를 보낼 때만 해도 여론은 좋지 않았다. 전성기가 꺾여가고 있으며 기존 팀들에서 잇달아 갈등상황을 유발했던 하든을 그렇게까지 비싼 댓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데려올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포워드의 대량 유출로 인한 윙 라인 뎁스 문제도 지적됐다. 하지만 하든이 팀에 적응을 마치기 무섭게 시너지효과에 불이 붙으며 제대로 상승세가 시작됐다. 한창때의 하든은 리그 최고의 득점머신이었다. 알고도 못막는 일대일 돌파는 역대급으로 꼽혔다. 그런 과정에서 브루클린과 필라델피아에서 팀 공헌도, 멘탈 모두에서 실망을 준바있는데 이는 향후에도 하든의 흑역사가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든이 잃은 것만 있지는 않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리딩가드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이제는 상당히 적응한 상태이며 그러한 능력치가 클러퍼스에서 터지고 있다. 하든이 듬직한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아줌에 따라 레너드와 조지의 볼핸들링 부담이 크게 줄었는데 그로인해 수비 등 다른 곳에서 남는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둘 중 한명 혹은 둘다 결장하게 되는 경우 하든이 주 공격옵션으로 공백을 메워줄 수 있어 예전처럼 포워드 원투펀치만 막으면 되는 팀이 아니다. 웨스트브룩같은 경우 스스로 마음을 내려놓은지 오래다. 한때 자신이 1옵션으로 북치고 장구치면서 경기를 이끌어가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않는 유형이었으나 현재는 선발, 벤치를 가리지않고 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전천후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핵심선수 상당수가 자신이 선봉에 서서 게임을 리드하는 유형이다는 점에서 조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현재로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웨스트브록 정도 빼고는 각자 특별히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음에도 서로간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각자가 나름대로 할 것 다하면서도 볼이 잘 돌고 팀플레이가 된다.
거기에 3점슛 성공률 45%(6위)를 자랑하는 노먼 파웰(30‧190cm)이 확실한 스팟업 슈터로 빈공간을 책임져주고 있으며 이바차 주바츠(26‧213cm), 메이슨 플럼리(33‧213cm) 등 이타적이고 팀플레이에 능한 빅맨진들과의 조합도 잘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팀이 하나가 되어 톱니바퀴가 잘 맞아떨어지는지라 레너드 등이 무리하지 않고 어느 정도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클리퍼스가 올 시즌 제대로 사고를 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